광주광역시 승마 협회는 전남과 광주가 행정구역상 분리된 1986년 11월 1일부터 시작되나 1954년 설립된 전남 승마협회가 그 모체이다. 전남승마협회는 설립되면서 지금까지 구성원 모두가 광주에 주소를 둔 임원, 선수들로 구성되어 있어 전남승마협회가 그대로 광주 승마협회가 되었다.
광주에 승마가 등장한 것은 일제 말 경성제대 승마 선수였던 일본인「아베」가 전남 경찰부장(지금의 경찰국장)으로 부임하여 승마보급에 힘쓰면서 비롯되었다.
전남경찰기마대를 조직한 「아베」는 지방유지와 부호들에게 승마를 권유했는데 당시승마를 즐긴 사람은 현준호, 지창선, 정상호

, 민병기, 정세환, 정국훈, 고광표, 노인환, 박용조, 백학기, 정일송, 김진하, 김효중, 김제준등이었으며 이중 정국훈은 전남승마구락부 소년단을 조직해 광주동중, 김수남, 박경원, 정훈상, 정석일, 김철규등을 지도해 전남승마의 대들보로 길렀다.
1945년 광복과 더불어 창설된 전남승마구락부는 광주시 학동901번지 전남경찰기마대 마장에서 현판식을 갖고 활동을 시작하여 1946년에는 장성경마장에서 광복기념 전남마술 대회를 개최하였는데 이때 선수는 박용조, 김진하, 김동열, 김수남, 박진열, 박용호, 김철규등이었으며 장성팀은 이남재, 임봉근, 서한충, 서연호등이었다.
이 밖에 신태우, 이남재, 이장우등이 경찰기마대 선수로 승마교습을 지도하였다.
전남승마협회는 출범과 함께 「학교승마」강화에 힘써 고등학교에 승마부를 창단했는데 학생팀 제1세대는 정훈상, 이필선, 박용호(광주농고), 김철규,김수남(숭일고)이며 제2세대는 박경원, 박진열(동중, 후일광주고), 정훈태(광주사범), 한정일(광주고)등이다. 이때 경찰기마대로 활약한 선수는 김이두, 이종오, 모종남 등이 었으며 김옥환, 이양조, 한정희등도 학생선수로 활약하였다.
광주고, 광주일고, 광주농고 승마부는 후진 양성에 힘써 광주고는 정병주, 마영두, 김옥환, 박용직, 박종빈, 류수택, 김교현이 활약하였으며 광주일고는 양회선, 현영서, 국종남, 천병마, 장석원, 지남철, 노진영, 차종구, 김종철, 최병기등으로 이어졌다. 이 밖에도 전남공고의 황치덕, 숭일고의 양승규등이 활약했고 경찰기마대 선수로 염덕룡, 백낙천, 이종오, 김윤만들이 활동했다.

1960년 경찰오토바이의 등장으로 기마대가 해체되자 전남기마대 마장을 절반은 협회가 관리하고 절반은 김윤만에 의해 제일상업전수학교로 쓰이게 되었다. 그 후 또 다시 승마장이 전남맹아학교로 불하되어 전남승마협회는 제일상업전수학교 운동장을 승마장으로 사용하였다.
1960년 대전에서 열린 제41회 전국 체전에서 김철규와 박종빈은 마장마술과 중장애물 비월경기에서 각각 1위를 기록, 전국체전 첫 종합우승을 차지했고 1963년 제1회 전국마술 대회에서도 김철규와 유춘택이 각각 1위를 기록 또다시 시도별 종합우승을 차지하였다.
전남학생선수 제4세대는 1960년대 세대인 박종빈(광주고), 김용준(광주일고), 유춘택, 임헌식(광주공고)등인데 김철규와 이들 제4세대 선수들은 이후 1970년대까지 이어가며 각종 전국승마대회를  휩쓸었다.